‘HANA’ 이후 찾아온 질문, 인생 2막의 출발점
Q. 박사님은 ‘인생 2막’은 언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하시나요?
퇴직이라는 시점이 인생 2막의 시작이었는지, 아니면 그보다 앞서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정년퇴직 날짜를 인생 2막의 출발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릅니다. 제 인생 2막은 달력에 적힌 날짜가 아니라 HANA 피복관의 기술이전이 마무리되고 프랑스 아레바와의 특허소송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던 무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90년대 초 독일 연수 시절, 남의 나라 실험실 한구석에서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 손으로 피복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던 다짐이 21년이 넘는 연구 끝에 실제로 원자로 안에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토록 오래 바라던 목표에 도달했는데, 성취감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그래서,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낯선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목표를 향해 달리던 사람에서 방향을 다시 정해야 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퇴직을 5년쯤 앞두고부터 조용히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연구는 후배들에게 넘기기 시작했고, 대신 강연장에 나가 보고 청소년들 앞에 서 보고 은퇴한 선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퇴직 통보를 받고 나서 준비하면 이미 늦습니다. 저는 그 5년을 ‘인생 2막의 예열 기간’이라고 부릅니다. 갑자기 멈춘 엔진은 다시 걸기 어렵지만, 예열해 둔 엔진은 바로 달릴 수 있으니까요.
Q. 연구자로서 큰 성취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성취’보다 ‘가치 있는 삶’을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신소재 개발, 기술이전 등 연구자로서 큰 성취를 이루신 뒤에도 새로운 활동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박사님에게 성공 이후의 삶은 어떤 의미였나요?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던 날은 제 연구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다음 날 아침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상장은 거실 장식장에 놓여 있고, 고액의 상금은 통장에 들어와 있고, 신문 기사는 하루 지나면 아무도 보지 않고, 저는 여느 날처럼 아침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산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이제 뭐 하지?”
성취라는 것은 참 묘합니다. 올라가는 동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연료입니다. 그런데 도착하는 순간 연료로서의 수명이 끝나 버립니다. 저는 그 허전함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제게 던져준 질문이 고마웠습니다. “이 성취는 결국 누구에게 가 닿았는가?”
성취는 내 이름 옆에 붙는 것이고, 가치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붙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후자 쪽이 훨씬 오래 남는다는 것을 압니다.
직함을 내려놓은 뒤,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묻다
Q. 퇴직을 앞두고 가장 많이 고민했던 질문은 무엇이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떠날 시기가 되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합니다. 박사님 역시 퇴직 5년 전부터 인생 2막을 고민하셨다고 했는데, 당시 가장 크게 고민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아주 개인적이고 조금은 부끄러운 질문이었습니다. “직함과 연구실을 내려놓고 나면,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40년 가까이 제 정체성은 명함 한 장에 압축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용환 박사.’ 그 명함이 있으면 어디를 가도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실 카드키를 반납하고 나면 그 문장이 사라집니다. 저는 그것이 꽤 두려웠습니다. 솔직히 인정합니다. 평생 연구만 해 온 사람일수록 이 두려움이 더 큽니다.
두 번째 질문이 저를 구해 주었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남은 삶 동안 어떻게 선하게 쓸 것인가?”
이 질문으로 옮겨 오는 순간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앞의 질문은 ‘나에게 무엇이 남았는가’를 묻습니다. 뒤의 질문은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앞의 질문에는 답이 없지만, 뒤의 질문에는 할 일이 끝없이 나옵니다.
지르코늄 합금에 대한 제 전문 지식은 사실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몇 년만 지나면 후배들이 저보다 훨씬 잘 압니다. 하지만 700종이 넘는 후보 합금을 만들고 2만 개가 넘는 시편을 버리면서 배운 태도, 7년 반의 국제 소송을 견디며 익힌 인내, 안 될 것 같은 일을 되게 만드는 과정에서 얻은 판단력에는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나눠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Q. 경제적인 활동보다 ‘가치 있는 일’을 선택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박사님이 생각하는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가치의 기준은 다릅니다. 박사님이 지금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이 일은 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세 가지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첫째, 나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실제로 달라지는가. 둘째, 사회의 사각지대나 다음 세대에게 가 닿는 일인가. 셋째, 이 일이 끝났을 때 통장이 아니라 사람이 남는가.
작년에 경상북도 K-과학자로 위촉돼 칠곡군의 어린이 과학체험공간 조성 공모를 기획 단계부터 자문한 일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비 10억 원과 도비 2억 원을 확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통장에 들어온 돈은 사실상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 아이들에게는 과학을 만져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것을 가치 있는 일이라고 부릅니다.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경제적 활동을 폄하하지 않습니다. 은퇴 후에도 생활은 이어져야 하고, 그것은 대단히 정직한 일입니다. 다만 저는 40년 직장 생활로 최소한의 기반은 마련했으니, 남은 시간만큼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계산서’를 써 보기로 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건 해 보니 알겠더군요. 가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돈은 못 벌어도 사람이 모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모이면 결국 일이 생깁니다. 저는 요즘 재직 시절보다 더 바쁩니다.
과학자의 경험이 다음 세대와 지역으로 흐르려면
Q. 연구자로 평생 쌓은 지식과 경험을 다음 세대와 나누는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왜 ‘다음 세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청소년 강연, 과학문화 활동, 미래 과학자 육성 등에서 큰 열정을 보이고 계십니다. 후배와 아이들에게 꼭 남겨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숫자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과학자’는 초등학생 장래희망 10위 안에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를 크리에이터, 연예인, 운동선수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변화를 아이들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본 것 중에서 꿈을 고릅니다. 김연아 선수를 봤으니 피겨를 꿈꾸고, 박지성 선수를 봤으니 축구를 꿈꿉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동경할 만한 ‘과학자 스타’를 우리가 얼마나 보여줬는지 되물어야 합니다. 이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선배 과학자의 직무유기입니다.
사람들이 가끔 제게 묻습니다. “최고과학기술인상까지 받은 분이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최고 과학자니까 합니다.”
제가 강연에서 늘 쓰는 문장이 있습니다. “오늘 만난 과학자가, 내일의 당신입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교과서 속 위인이 아니라, 손 뻗으면 닿는 거리에서 자기 실패담을 솔직하게 들려주는 어른입니다. 저는 아이들 앞에서 성공담보다 실패담을 훨씬 길게 이야기합니다. 2만 개의 시편을 버린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 눈이 달라집니다. “아, 저렇게 훌륭한 분도 저렇게 많이 실패했구나” 하는 순간, 그 아이 안에서 뭔가가 풀립니다. 저는 그 표정을 보려고 강연장에 나갑니다.

Q. 최근에는 은퇴한 고경력 과학기술인들의 새로운 삶과 경력전환에도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 사회는 은퇴한 전문 인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퇴직과 동시에 사회에서 역할을 잃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경력 인재가 계속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한 가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경력 과학기술인은 ‘소모된 인력’이 아니라 ‘아직 개봉하지 않은 사회적 자산’입니다.
한 명의 박사급 연구자를 길러 내는 데 국가와 사회가 얼마를 투자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30년, 40년 현장에서 쌓은 판단력과 인적 네트워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사람이 만 예순몇 살이 되는 날, 그 자산 전체를 한꺼번에 창고에 넣어 버립니다. 저는 이것이 국가적으로 대단히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상북도의 K-과학자 사업이 좋은 사례입니다. 은퇴한 과학자들을 지역 현장과 연결했더니, 자문이 실제 국비 확보로 이어지고 지역의 과학 강연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은퇴 과학자 한 사람이 지역의 문제 하나를 푸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개인의 선의에만 기대서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분은 열정이 있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어떤 지자체는 도움이 절실해도 누구를 불러야 할지 모릅니다. 그 사이를 이어 주는 제도적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은퇴는 ‘방전’이 아니라 ‘이동’이어야 합니다. 연구실에서 사회 현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지요. 저는 그 이동로를 닦는 일을 인생 2막의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Q. 박사님의 인생을 보면 ‘혼자 성공하는 것’보다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 점점 중요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을 연결하는 활동에서 어떤 보람을 느끼시나요?
과학자와 시민, 원로 과학자와 청소년, 지역사회와 전문가를 연결하는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개인의 성취와 사람을 연결하며 만드는 성취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십니까?
저는 요즘 ‘레전드 과학자 사이언스 콘서트’와 ‘K-과학자 어벤져스’ 같은 무대에서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국가대표급 원로 과학자를 무대에 모시고, 그분의 연구 인생을 시민과 청소년 앞에 풀어놓는 자리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색했습니다. 평생 실험복만 입던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서다니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됐습니다. 이 일이 제가 평생 해 온 일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요. 저는 지르코늄에 다른 원소를 아주 미량 넣어 완전히 새로운 성질의 합금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원로 과학자와 청소년을, 과학과 지역사회를 만나게 해서 전에 없던 무언가가 생겨나는 것을 봅니다. 저는 촉매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혼자 이룬 성취는 액자에 걸립니다. 아름답지만 그 자리에서 멈춥니다. 함께 만든 성취는 걸어 다닙니다. 제가 자문한 아이디어가 지역의 공모 사업이 되고, 제가 무대에 모신 과학자의 이야기가 어느 중학생의 진로가 되고, 그 학생이 10년 뒤 연구자가 되어 또 누군가를 무대에 세우겠지요. 이게 선순환입니다.
보람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 이름이 남는 기쁨에서 내 이름이 없어도 계속되는 무언가를 만드는 기쁨으로 옮겨 간 것입니다. 후자가 훨씬 크고, 훨씬 오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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