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서비스 개발 방식이 ‘기획서를 쓰고 대규모 시스템을 발주하는 일’에서 ‘현장 공무원이 먼저 작동하는 시제품을 만드는 일’로 넓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8월 25일 발표한 AI민주정부 전략에서 AI정부실험실을 확대하고, 업무용 AI 시스템 ‘온AI’를 47개 중앙부처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AI정부실험실은 공무원이 대화형 코딩 도구와 공공데이터, 공공 API를 이용해 업무용 웹프로그램이나 앱을 시험하는 공간이다. 별도의 개발환경을 처음부터 구성하지 않아도 일상 언어로 필요한 기능을 설명하면 AI가 자료를 구조화하고 코드를 만들어 시제품으로 구현한다.
기존 방식에서는 작은 개선 아이디어도 예산 편성과 기획, 계약과 개발 절차를 거쳐야 해 실제 작동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실험실은 먼저 작은 기능을 만들어 현장에 필요한지 살펴보고, 가치가 확인된 과제만 추가 개발하는 접근이다. 정부가 모든 개발 절차를 AI로 대체한다는 뜻은 아니다.

행안부가 7월 공개한 초기 사례는 ‘나라예산 한눈에’, ‘재난문자 지도’, ‘모두의 민원콜’이다. 나라예산 한눈에는 부처별로 흩어진 예산 설명자료를 수집해 사업명과 담당부서, 예산액과 증감 현황을 검색하도록 만들었다. 기존에는 특정 부서의 예산을 살펴보려면 여러 HWP 파일을 각각 내려받아야 했다.
재난문자 지도는 지역별 호우·폭염 등 문자 발송 현황을 지도에서 비교하도록 만든 시제품이다. 모두의 민원콜은 ‘임금체불 상담’, ‘여권 발급’, ‘전세사기 상담’ 같은 내용을 입력하면 관련 기관과 가까운 지방자치단체 연락처를 안내한다. 행안부는 세 사례가 각각 업무시간 기준 하루나 이틀 정도 걸렸다고 설명했다.
8월 발표에서는 한국국토정보공사 직원들이 태양광 입지와 예상 발전량, 수익과 절차를 한 화면에서 살펴보는 시제품을 만든 사례도 소개됐다. 현장과 공간정보를 아는 담당자가 문제를 정의하고 AI 코딩 도구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AI 도입의 중심이 개발부서만이 아니라 업무 담당자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공무원의 일상 업무에는 ‘온AI’가 투입된다. 정부는 법령 검토, 보고서 초안 작성, 예산 검색 같은 행정업무를 지원하도록 하고 2026년 12월까지 47개 중앙부처에 도입할 계획이다. 식품의약품 심사·허가, 건축허가와 안전관리, 치안 현장 보조, 조달 제안요청서 작성 등 부처별 전문업무에 맞춘 AI도 확대할 방침이다.
도구만 배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의 활용 역량도 키운다는 계획이다. 모든 공무원에게 AI 교육을 제공하고,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AI 챔피언’을 포함해 자체 개발과 적용 능력을 갖춘 전문인재 2만 명을 단계적으로 양성한다. 실제 성과는 교육 수료 인원보다 현장의 반복업무가 줄었는지, 민원 처리와 정책 검토의 정확성이 높아졌는지로 확인해야 한다.
개발 속도가 빨라져도 곧바로 국민이 쓰는 정식 서비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험실 결과물은 문서와 소스코드, 프롬프트를 공공 GitLab에 등록해 다른 공무원이 검토하고 개선한다. 여러 기관으로 확산할 과제는 행안부가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품질을 추가로 검증한 뒤 유지·관리 체계를 마련한다.
공공서비스는 일반 업무용 도구보다 검증 책임이 무겁다. 잘못된 민원 연락처를 안내하거나 일부 지역의 재난정보를 빠뜨리면 단순한 작업 오류를 넘어 국민의 권리와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시제품의 생성 속도와 정식 서비스의 신뢰성을 같은 성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실험실 공개 당시 38개 과제가 등록돼 있었지만, 8월 25일 브리핑에서는 이용 등록자가 2,000명에 가깝고 프로젝트가 600~700개 수준이라고 설명됐다. 짧은 기간에 참여가 늘어난 만큼 비슷한 프로그램의 중복, 오류 수정 책임, 담당자의 유지보수 부담을 관리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공공 GitLab에 코드를 공유하면 다른 기관이 비슷한 기능을 새로 발주하는 일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반면 원래 업무를 맡은 공무원에게 수정 요청이 계속 몰릴 수 있다. 행안부도 우수과제를 공식적으로 선정한 뒤 예산과 담당조직을 붙여 보안 점검, 확산, 유지보수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국민 입장에서 중요한 기준은 ‘AI를 썼는가’가 아니라 결과를 누가 확인하고 잘못됐을 때 어디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다. 정부도 2027년부터 AI 사업의 개인정보·보안·윤리 영향을 검토하는 평가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다. 빠른 시제품 제작이 실제 행정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사람의 최종 판단과 공개된 검증 절차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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