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최고경영자 자리가 15년 만에 바뀐다. 애플은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을 이끌어온 존 터너스가 9월 1일 팀 쿡의 뒤를 이어 최고경영자에 취임한다고 밝혔다. 쿡은 회사를 떠나는 대신 이사회 집행의장으로 자리를 옮겨 정책 당국과의 관계를 비롯한 일부 업무를 계속 맡는다.
이번 인사는 단순한 세대교체 이상으로 읽힌다. 챗GPT 등장 이후 기술기업들이 거대한 AI 모델과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돈을 투입하는 동안 애플은 대응이 늦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 애플이 새 수장으로 영업이나 재무 전문가가 아니라 아이폰과 맥 개발을 지휘한 엔지니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아이폰과 맥을 만든 25년 애플맨
터너스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2001년 애플 제품디자인팀에 합류했다. 2013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 2021년 수석부사장에 올랐다. 애플에 따르면 그는 아이패드와 에어팟 도입, 여러 세대의 아이폰·맥·애플워치 개발에 관여했고, 맥을 인텔 칩에서 애플이 직접 설계한 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했다.
애플이 터너스를 선택한 이유를 공식적으로 ‘AI 위기’라고 설명한 것은 아니다. 4월 승계 발표문에는 AI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사회는 장기간 준비한 승계 절차였다고 밝혔고, 쿡도 회사의 실적과 향후 제품 계획, 터너스의 준비 상태가 맞물려 지금이 적기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시장은 기술자 CEO의 등장을 제품 중심 경영을 강화하려는 신호로 해석한다. 로이터가 취재한 전문가들은 터너스의 경력이 애플의 강점인 하드웨어·소프트웨어·자체 설계 칩의 결합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는 기존 전략을 모두 뒤집는 급격한 전환보다 애플이 잘해온 제품 생태계에 AI를 더 깊게 넣는 변화에 가깝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팀 쿡이 완성한 ‘운영의 애플’
팀 쿡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제품 기획자라기보다 공급망과 생산·재고 관리에 강한 운영 전문가였다. 그는 1998년 애플에 합류해 복잡한 생산망을 정리했고, 2011년 최고경영자가 된 뒤 아이폰 사업의 규모를 키우면서 서비스와 웨어러블을 새로운 수익축으로 만들었다.
애플이 공개한 수치에 따르면 쿡 재임 기간 회사의 시가총액은 약 3천500억 달러에서 4조 달러로 늘었다. 연 매출은 2011회계연도 1천80억 달러에서 2025회계연도 4천16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됐고, 서비스 사업은 연간 1천억 달러를 넘었다. 활성 기기도 25억 대 이상으로 증가했다.
따라서 CEO 교체를 ‘운영 경영의 실패’라고 규정하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쿡은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기술기업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 쿡이 집행의장으로 남는 것도 공급망과 각국 정부 관계에서 경영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장치로 볼 수 있다.
다만 다음 성장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남았다. 아이폰 이후 애플워치·에어팟·비전 프로가 등장했지만, 생성형 AI처럼 컴퓨터 사용방식 자체를 바꿀 새로운 흐름에서는 애플이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기업가치 선두로 올라서는 동안 애플의 혁신 속도를 걱정하는 투자자도 늘었다.
AI를 직접 만들기보다 AI가 돌아가는 컴퓨터
흥미로운 반전은 맥에서 나타났다. 애플이 거대 AI 모델 경쟁에서는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사이, 맥 미니와 맥 스튜디오, 고성능 맥북은 AI 모델과 자동화 도구를 개인 컴퓨터 안에서 실행하려는 개발자와 이용자에게 주목받았다.
애플이 직접 설계한 M 계열 칩은 중앙처리장치와 그래픽처리장치가 하나의 통합 메모리를 함께 사용한다. 메모리 용량이 충분한 맥에서는 인터넷 서버에 자료를 보내지 않고도 중소형 AI 모델을 실행할 수 있다. 개인정보를 기기 안에 두고 응답 지연과 사용료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로컬 AI 수요와 맞아떨어졌다.
모든 맥에서 모든 AI 모델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형 16GB 모델은 작은 모델과 일반적인 AI 도구에는 활용할 수 있지만, 매개변수가 많은 대형 모델은 더 큰 메모리와 높은 대역폭이 필요하다. 맥을 ‘AI 모델이 모두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컴퓨터’로 일반화하기보다, 로컬 AI에 유리한 구조를 갖춘 개인용 플랫폼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수요는 실적에서도 일부 확인됐다. 애플의 2026회계연도 2분기 맥 매출은 83억9천900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6% 증가했다. 팀 쿡은 실적 발표에서 맥 미니와 맥 스튜디오가 AI와 AI 에이전트 도구에 적합한 플랫폼으로 인식되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다고 설명했다. 일부 제품은 수요가 공급을 앞서기도 했다.
실적 발표 다음 날 애플 주가는 3.2% 상승했다. 다만 이를 맥 판매만의 효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전체 매출과 이익의 시장 예상치 상회, 서비스 매출 신기록, 1천억 달러 규모의 추가 자사주 매입이 함께 발표됐다. 로컬 AI용 맥 수요는 주가를 움직인 단독 원인이 아니라 애플의 실적을 뒷받침한 여러 요인 중 하나였다.
아무것도 안 해서 올랐다!
2026년 여름에는 애플이 AI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는 비꼬는 평가도 나왔다. 문자 그대로는 사실이 아니지만 그 배경에는 투자비용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알파벳·메타 등이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쓰는 동안 애플은 같은 규모의 투자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다.
7월 중순 애플 주가는 석 달 동안 20% 이상 상승했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투자자들이 애플의 신중한 AI 지출과 높은 현금창출 능력을 재평가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직접 세계 최고의 AI 모델을 만드는 대신 25억 대가 넘는 기기에서 여러 AI를 이용하도록 하고, 고성능 아이폰과 맥의 교체 수요 및 서비스 매출로 연결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전략에는 위험도 있다. 외부 AI 기업의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애플이 이용자 경험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AI 기업이 자체 스마트폰이나 안경, 개인용 컴퓨터를 내놓으면 애플의 하드웨어 영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다. 터너스는 필요한 기술을 외부에서 가져오는 속도와 애플만의 기술을 직접 만드는 투자를 동시에 결정해야 한다.
새 CEO가 보여줘야 할 애플의 다음 비전
터너스 체제의 첫 번째 과제는 AI를 아이폰과 맥에서 실제로 쓸 만한 기능으로 만드는 것이다. 발표 자료의 문장을 요약하는 수준을 넘어, 이용자의 일정과 파일·메시지를 이해하고 여러 앱을 오가며 일을 수행하는 AI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애플이 강조해온 개인정보 보호를 얼마나 지킬지도 중요하다.
두 번째 과제는 새로운 AI 기기의 형태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질문하고 답을 받는 방식을 넘어 안경·이어폰·시계처럼 사용자의 주변을 이해하는 기기가 AI의 다음 입구가 될 수 있다. 터너스의 하드웨어 경험은 이 지점에서 강점이지만, 아직 애플이 구체적인 차세대 제품 계획을 공개한 것은 아니다.
세 번째 과제는 맥이 확인한 로컬 AI 수요를 일반 이용자에게 넓히는 일이다. 개발자만 복잡한 프로그램을 설치해 쓰는 단계에서 벗어나 학생과 직장인도 자신의 자료를 외부로 보내지 않고 요약·검색·자동화할 수 있어야 한다. 애플 실리콘과 운영체제를 함께 설계하는 구조는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이다.
팀 쿡이 구축한 공급망과 서비스, 막대한 현금흐름은 터너스가 새로운 제품을 시험할 수 있는 토대다. 이제 애플에 필요한 것은 운영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잘 돌아가는 운영체계 위에서 다시 기술혁신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15년 전 쿡은 스티브 잡스가 남긴 혁신을 세계적인 사업으로 확장해야 했다. 터너스는 쿡이 키운 거대한 사업을 AI 시대의 새로운 사용자 경험으로 바꿔야 한다. 애플의 이번 CEO 교체가 진정한 혁신 승부수가 될지는 직함이 아니라 앞으로 내놓을 아이폰과 맥, 그리고 그 안에서 작동할 AI가 증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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